Cursor의 디자인 총괄 Rio Lou와의 대화를 통해 AI 시대 제품 디자인의 패러다임 전환을 살펴봅니다.
1.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역할 융합
AI 코딩 에이전트의 발전은 디자인과 개발 영역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Rio Lou는 이제 디자이너가 코드를 직접 다루고, 엔지니어가 디자인적 결정을 더 많이 내리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역할 확장이 아니라 근본적인 작업 방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과거 디자이너와 개발자 사이의 공통 언어는 픽셀 단위로 정의된 디자인 스펙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코드 자체가 공통 언어가 됩니다. 이는 “완벽한 설계 후 구현”이라는 워터폴 (Water-fall) 방식에서 벗어나, 일단 빌드하고 반복적으로 다듬는 방식이 표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정적인 목업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 디자이너가 코딩을 학습해야 하는 이유: 진입장벽의 소멸
전통적으로 코딩은 디자이너에게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영역이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 데이터 구조, 알고리즘 등 학습해야 할 개념이 방대했고, 이는 디자이너가 코드를 배우는 것을 현실적으로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Cursor와 같은 AI 코딩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AI가 개념의 공백을 메워주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어떻게 구현할지”라는 기술적 세부사항보다 “무엇을 만들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Rio는 이를 “모른 채로 시작해도 되는 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과거에는 충분한 지식을 갖춘 후에야 코딩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만들면서 배우는 학습(learning by building)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AI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제공하고 코드를 생성해주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 개념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3. 디자인 프로세스의 근본적 재정의: 조각(Sculpting) 패러다임
Rio Lou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를 “조각(sculpting)”이라는 은유로 설명합니다. 이는 디자인 작업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디자인 워크플로우:
- 와이어프레임 작성
- 고해상도 시안 제작
- 픽셀 단위 상세 조정
- 정적인 목업을 개발팀에 전달
AI 시대의 새로운 워크플로우:
- AI 에이전트에게 의도를 전달
- 60~70% 완성도의 실제 작동하는 결과물 생성
- 깎고(remove), 합치고(merge), 조정하며(refine) 다듬기
- 결과물은 이미 실제 제품 코드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결과물이 더 이상 “목업”이 아니라 실제로 동작하는 제품이라는 점입니다. 디자이너는 점토를 다루듯이 코드를 다루며,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프로토타이핑과 실제 개발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디자인 의도가 실제 구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던 정보 손실이 최소화됩니다.
4. Cursor의 제품 철학: 시스템 중심 사고와 개념의 최소화
Rio Lou가 Cursor를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개념의 최소화(minimizing primitives)”입니다. 그는 이를 Notion의 “블록” 철학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Notion의 블록 시스템 사례

Notion에서 텍스트, 이미지, 체크리스트, 토글, 테이블, 데이터베이스는 모두 다른 기능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성질의 “블록(Block)”입니다. 이러한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 새로운 기능 추가 시 새로운 U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블록을 다른 방식으로 조합
- 사용자는 복잡한 기능을 사용하지만 학습해야 할 핵심 개념은 ‘블록’ 하나
- 겉으로는 강력하지만 속은 단순한 구조 유지
Cursor의 에이전트 중심 설계

Cursor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과거 Cursor는 Chat, Composer, Agent, Bug Finder 등 여러 개별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용자는 “이건 언제 사용하는 거지?”라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Rio는 이를 “에이전트” 하나로 통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 Ask mode: 편집 없이 질문에 답하는 에이전트
- Plan mode: PRD처럼 계획만 세우는 에이전트
- Build mode: 실제 코드를 수정하는 에이전트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내부적으로 동일한 에이전트이며 설정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Notion의 텍스트 블록과 체크리스트 블록이 사실은 같은 블록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 디자인(system design) 사고입니다. 기능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사용자는 “아, 이건 그냥 에이전트에게 시키는 거구나”라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제품은 확장되지만 설명은 오히려 더 간단해집니다.
5. 파일 중심에서 에이전트 중심 UI로의 전환
Cursor는 최근 UI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개선이 아니라 제품의 멘탈 모델 자체를 바꾸는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기존 코드 에디터의 접근:
- 처음 열면 빈 파일 트리와 코드 에디터
- 사용자는 “어디서부터 시작하지?”라는 인지 부하
새로운 Cursor의 접근:
- 처음 열면 프롬프트 입력창부터 등장
- 코드를 몰라도 바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경험
- 파일 트리, Git, 고급 설정 등은 모두 존재하지만 처음엔 숨겨짐
이는 레이어드 UX(Layered UX) 전략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복잡한 기능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필요해지는 순간에만 점진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레이어드 UX의 3단계 구조
Layer 1: 시작 레이어 (Zero-friction)
- 사용자가 아무것도 몰라도 할 수 있는 것
- 선택지 최소화, “일단 여기서 시작하세요”가 명확
- 예: Cursor의 프롬프트 입력창 하나만 있는 초기 화면
Layer 2: 맥락 기반 도구 노출
- 사용자의 행동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등장
- “이제 이게 필요하겠네?”라는 타이밍에 표시
- 예: 에이전트 작업 완료 후 “Review changes” 버튼 등장, 그때 코드 diff 노출
Layer 3: 파워 유저 레이어
- 단축키, 고급 설정, 멀티 에이전트 등
- 기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본값에서만 숨겨짐
- 예: Git 통합, 상세 파일 관리, 커맨드 팔레트 등
이러한 레이어드 접근의 핵심은 인지 부하(cognitive load) 관리입니다. 사람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지금 필요 없는 정보가 보일수록 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레이어드 UX는 같은 시스템이지만 사용자의 숙련도와 맥락에 따라 다른 깊이를 허용합니다.
6. AI 시대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
AI가 디자인과 개발의 60%를 자동화 할 수 있다면 나머지 40%에서 디자이너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Rio Lou는 다음 세 가지 역량을 강조합니다.
6-1. 디테일과 완성도를 밀어붙이는 크래프트 감각
AI는 빠르게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지만, “좋은” 제품과 “훌륭한” 제품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미세한 조정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타이포그래피의 여백, 인터랙션의 타이밍, 정보 위계의 균형 등 AI가 아직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영역에서 디자이너의 크래프트가 드러납니다.
6-2.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고
개별 화면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앞서 설명한 Cursor의 “에이전트” 개념처럼, 디자이너는 다음을 고민해야 합니다:
- 이 제품의 핵심 개념(primitive)은 무엇인가?
- 어떤 구조가 10년 후에도 유효할 것인가?
-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 새로운 개념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기존 개념을 재조합할 것인가?
6-3. 기술적 제약 이해와 효과적인 AI 지시 능력
AI 에이전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기술적 제약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 “이 애니메이션을 구현하려면 어떤 성능 이슈가 있을까?”
- “이 기능은 클라이언트 사이드에서 처리해야 할까, 서버 사이드에서 처리해야 할까?”
- “데이터를 어떻게 구조화하면 확장 가능한 시스템이 될까?”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AI에게 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지시를 내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7. 인터페이스의 미래: 적응형이지만 예측 가능한 UI
“AI 시대에는 UI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지만, Rio Lou는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UI는 사라지지 않으며, 대신 사용자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적응형 UI의 조건
핵심 구조는 동일:
- 사용자가 제품의 기본 멘탈 모델을 학습할 수 있어야 함
-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예측 가능해야 함
노출 방식만 개인화:
-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 더 눈에 띄게
- 사용하지 않는 기능은 자연스럽게 숨겨짐
- 하지만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위치는 일정
Rio가 강조한 것은 “매번 다른 UI”가 아니라 “나에게 점점 맞춰지는 UI”가 이상적이라는 점입니다. 완전히 무작위적인 UI는 사용자에게 혼란을 주지만, 예측 가능한 구조 위에서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UI는 효율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이는 마치 자주 사용하는 앱이 점차 내 손에 익듯이, UI도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하여 자연스럽게 최적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적응이 사용자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8.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창업자를 위한 조언
Rio Lou는 마지막으로 제품을 설계하는 모든 이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깁니다.
“변하지 않을 핵심을 먼저 정의하라”
특정 유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은 쉬운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제품을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대신:
지금과 10년 후에도 유효할 핵심 개념(primitives)을 정의하세요.
- Notion의 “블록”처럼, Cursor의 “에이전트”처럼
- 모든 기능이 이 핵심 개념의 조합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문제는 기능 추가가 아니라 재조합으로 해결하세요.
- 새 버튼을 만들 것인가, 기존 시스템을 다르게 구성할 것인가?
-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할 것인가, 더 똑똑한 기본값을 제공할 것인가?
복잡해질수록 다시 단순화하는 용기를 가지세요.
- 기능 삭제는 어렵지만, 때로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결정입니다
- “덜어내기”는 “추가하기”만큼이나 중요한 디자인 스킬입니다
Rio의 조언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능보다 구조에, 화면보다 시스템에 집중하라”입니다.
결론: 디자이너 역할의 재정의
AI 시대의 디자이너는 더 이상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직접 만들고, 다듬으며,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Cursor의 Rio Lou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의 사용법이 아니라, 제품을 사고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입니다. AI가 구현의 장벽을 낮춰주는 만큼, 디자이너는 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 제품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 어떤 구조가 시간이 지나도 유효할 것인가?
- 복잡성을 어떻게 관리하며 단순함을 유지할 것인가?
이러한 변화는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단순히 예쁜 화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더 높은 수준의 사고가 요구됩니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픽셀과 코드를 오가며, 미학과 논리를 통합하고, 사용자 경험과 시스템 아키텍처를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더 나은 제품을 통해 사용자에게 가치를 제공한다”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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